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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스포츠 다시 정리해 본다.

(KBO 기록) 한국프로야구(KBO)의 역사를 정리하다

by 자유인(남상) 2023. 7. 21.

- 우리나라 프로야구단 설립을 위한 최최의 활동은 1975년 재미동포 000분이 프로야구 추진 위원회를 만들어 노력 하였지만, 당시의 국내 경제 상황등을 감안하면 다소 이른감이 있었고, 정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980년대 전두환 정부는 국민들의 관심사를 정치에서 떠나게 하기위한 3S 정책을 적극 추진 하였으며, 그의 일환으로 당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인 고교야구를 발판삼아 프로야구단 설립을 추진한다. 하지만, 부족한 재원은 대기업들에게 부담을 지게 하였고, 기업들에게는 세금 감면 등의 혜택으로 프로야구 리그를 출범 시킬 수 있었다.

-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1981년 문화방송(MBC)에서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프로야구단 창설을 계획하고, 이호헌씨에 업무를 맡겼다. 이용일씨와 함께 8월 프로야구 창단 계획서를 완성한다. 이에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과 주요 기업들을 참여시키면서 다른 구단들도 발빠르게 창단을 준비하면서, 처음 4개 구단 체제에서 6개 구단으로 확대가 논의 되었고, 마침내 12월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창설총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프로화가 시작된다.

- 서울 연고는 일찌감치 MBC로 낙점 되었고, 이어서 부산 경남은 롯데가, 대구 경북은 삼성이, 호남지역은 삼양사, 금호그룹, 대한교육보험 등 호남지역 연고기업들이 논의 되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난항을 겪어면서 전남야구협회 김종태씨와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씨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태를 참여 시킨다. 해태의 '검빨 야구복' 아이디어도 김동엽씨의 작품이다. 대전 충청지역 한국화약, 동아건설 등 지역 업체들은 난색을 표하였고, 두산그룹의 박용곤 회장이 야구에 관심이 있어 참여를 타진하고, 지역 연고를 3년후 서울로 한다는 조건으로 참여하였다. 인천과 경기,강원 지역은 현대가 적격 이었지만, 관심 밖이었고 다음으로 한국화장품, 대한항공도 실패하였다. 하지만 삼미의 김현철 회장이 야구에 관심이 있어 어렵게 합류하여 마침내 6개 구단으로 출범 할 수 있었다.

- 1982년 봄 마침내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 되었다.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겐 정열과 낭만을, 온 국민에겐 건전한 여가 선용을' 이란 캐치프레이저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프로야구가 시작된다. 당시 군사 정부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관심사로 눈을 돌리기 위한 정책이 필요했고, 그런 정책의 일환으로 스포츠 분야에서 야구, 축구 등의 프로화가 추진 되었으며, 야구가 그 시작이었다.

- 돌이켜보면, 창단 의도가 순수하게 야구의 인기에 힘입어 프로화가 진행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당시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었고, 고교아구와 실업야구의 인기를 발판으로 프로화가 진행 되었고, 의도적으로 아마야구를 희생히면서 프로야구를 활성화하는 역사는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 우여곡절 끝에 1981년  12월 11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가 창립되었고, 초대 총재로 서종철, 이용일 사무총장, 이호헌 사무차장이 선출되었다. 이어서, 기업과 지역이 연계하여 6개팀으로 한국프로야구팀이 창단을 시작한다. 82년 1월 15일 충청지역 연고팀 OB 베어스(초대감독 : 김영덕), 1월 16일 서울 연고팀 MBC 청룡(초대감독 : 백인천), 1월 30일 광주 및 전라도 지역 연고팀 해태 타이거즈(초대감독 : 김동엽), 2월 3일 대구 및 경북지역 연고팀 삼성 라이온즈(초대감독 : 서영무), 2월 5일 인천 및 경기와 강원도 연고팀 삼미 수퍼스타즈(초대감독 : 박현식),  2월 12일 부산 및 경남지역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초대감독 : 박영길) 팀이 각각 창단식을 가진다.  

- 1982년 : 6개구단 리그 : 3월 27일 동대문 구장에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 팀의 개막 경기로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첫해에는 개막전 MBC의 이종도 선수의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시작하여, 올스타전 김용희(롯데)선수의 만루홈런, 마지막 한국시리즈  6차전의 OB의 김유동의 만루홈런까지 첫해 프로야구 흥행과 만루홈런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다.출범 첫해에는 각 팀당 80경기를 가졌으며, 전기리그와 후기리그 우승팀이 맞붙어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최종 1위로 결정하는 방식 이었다.

- 첫해 KBO와 각 구단들의 운영은 형편 없었다. 팀운영, 선수운영, 관리자 운영, 경기 운영 등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첫해였다. 각 구단 선수층은 25명 내외로 80경기를 치르기 어려운 숫자 였고, 해태는 선수 15명으로 출범 하였다. 성적 부진으로 감독들은 수시로 교체 되었고(삼미, 해태 ), 팀간 극명한 전력차이는 팬들을 화나게 하였다. 당시 선수 계약금과 연봉은 A-F로 나누어 금액을 특정 하였고, 특급 선수들은 한단계 높은 연봉을 지급하였다. 박철순 등. A급 선수의 연봉은 당시 일반 샐러리맨들의 10배를 연봉으로 책정 하였다.

- 백인천 선수의 시즌 타율 0.412, 박철순 선수의 22연승 등 넘사벽 기록들이 달성된다.

- 1983년 : 6개구단 리그 : 첫해의 선수 부족과 리그의 질을 높이기 위해 팀에서 재일동포들을 리그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삼미의 장명부 선수와 삼성의 김일융 선수는 엄청난 일본 야구의 힘을 보여 주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통과 경험 그리고 실력의 차이는 국내 리그와 현격한 격차를 보여 주었다.

- 둘째해는 1982년 가을 서울에서 개최되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을 핑계로 아마추어의 영웅들이 입단을 한해 미루었고, 이해에 데뷔하게 된다. 김시진, 최동원, 김용남, 한대화, 김재박 선수등 리그에 새롭게 참여한다. 장명부 선수의 시즌 30승은 불멸의 기록이고, 투구이닝 400이닝은 다시는 있어선는 안되는 혹사의 기록이다. 

- 1984년 : 삼성은 앞도적인 성적으로 전기리그의 우승을 하였고, 후기리그 우승팀을 고르기 위해 상대적을 편한 롯데를 선택하여 후기리그 져주기 게임을 펼쳐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지만, 결과는 롯데의 최동원 선수가 한국시리즈 혼자 4승을 거두는 괴력을 발휘하여 우승은 롯데가 차지하게 된다.

- 1985년 : 6개구단 리그 :  후기리그 시즌부터 경영난을 거친 삼미 수퍼스타즈를 청보 핀토스(초대감독 : 김진영)가 인수하여 리그에 참가한다. 이해 가을 OB베어스는 연고지를 충청에서 서울로 이전을 시작한다. 따라서, 대전과 충청도를 연고지로 한 새로운 팀이 창단된다. 삼성은 지난 3년간 월등한 기량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쳐, 이 해는 아예 월등한 전력으로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싹쓸이 하면서 우승해 한국시리즈가 없이 통합 우승을 차지한다. 이 결과로 인해 KBO에서는 전기, 후기 리그 우승팀과 별개로 한국시리즈를 반드시 개최하도록 제도를 정비하였다.

- 시즌을 앞두고 동계 훈련으로 삼성이 미국의 LA다저스 구단으로 스프링 캠프를 차려, 겨울 전지 훈련에서 선진 야구를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 1986년 : 7개구단 리그 : 이해 부터는 한국프로야구 리그는 6개구단에서 대전과 충청도를 연고지로 한 빙그레 이글스(초대감독 : 배성서)가 참가하여  7개 구단으로 확대되어 시즌을 시작한다. OB 베어스는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한다. 홀수 구단수로 리그를 운영하면 한팀이 경기가 없이 쉬게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 이 해는 프로야구 통산 100호 홈런 최초 달성자가 되기위한 라이벌전이 벌어진다. 김봉연(해태) 선수와 이만수(삼성) 선수의 통산 100호 홈런 경쟁으로 프로야구가 뜨거웠다. 결과는 이만수 선수가 먼저 통산 100호 홈런을 쏘아 올린다.

- 1987년 : 이 해에는 프로야구 통산 100승 투수 최초 달성자의 라이벌전이 세미의 관심을 끌었다. 김시진(삼성) 선수와 최동원(롯데) 선수의 라이벌전이 뜨거운 한 해였다. 김시진 선수가 5시즌만에 통산 100승을 거두는 대기록을 세웠다.

- 1988년 : 7개구단 리그 : 청보 핀토스가 태평양에 인수되어 태평양 돌핀스(초대감독 : 김성근)가 리그에 참가한다. 이 해는 선수협 파동으로 삼성과 롯데의 충격적인 트레이드가 있었다. 김시진과 최동원, 장효조와 김용철 등 양 구단에서 선수협 주축 선수들의 상대팀으로 트레이드하는 충격적인 만행을 저지른다.

- 1989년 부터는 82년 개막시즌 부터 시행한 전기리그, 후기리그로 나누어 진행하던 방식을 통합해 단일리그로 통합하여새로운 변화를 추구 하였다.

- 1990년에는 MBC 청룡을 LG 트윈스(초대감독 : 백인천)가 인수하여 리그에 참가한다.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한 쌍방울 레이더스(초대감독 : 김인식)가 창단하여 2군 리그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고, 이는 정치적인 이슈로 호남 분열 책동으로 오해를 받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민심을 달래 어렵게 리그에 참가 할수 있었다. 이해는 야구 선진국 수준인 관중 300만 시대를 맞이하여 명실공히 국민스포츠로 자리한다. 연봉 인상 25% 제한제도가 폐지 되었다.

- 1991년 : 8개구단 리그 : 전라북도를 연고지로한 쌍방울이 1부 리그에 참가 함으로서 정식적인 8개 구단 체제로 리그가 확대되면서 안정적으로 운영 되었다. 리그 창설 1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하여 한일 수퍼게임을 일본에서 개최한다.

- 1993년 관중 400만 시대가 되었다.

- 1994년 : 빙그레 이글스가 구단 명칭을 한화 이글스(감독 : 강병철)로 변경하여 리그에 참가 하였다.

- 1995년 : 리그 종류 후 인천과 경기도 연고팀인 삼미 수퍼스타즈와 청보 핀토스를 거쳐 태평양 돌핀스로 구단을 이어오다 4번째로 현대가 구단을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초대감독 : 김재박)로 인수 되었다. 인수 후 주 경기장을 인천 숭의 야구장으로 선정하며, 인천을 주 연고지를 이용 하였다. 이해에 관중 540만명 시대를 열었다.

- 1996년 : 삼미-청보-태평양-현대로 4번째 승계가 되는 비운을 맞이하여, 현대 유니콘스가 정식으로 리그에 참가 하였다.

- 1998년 :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 되었다. IMF 경제 위기로 인기가 사그라 들었고, 프로축구에 관중수가 뒤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모 기업들의 위기로 구단지원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 1999년에는 서울 연고팀인 OB 베어스가 팀 명칭을 두산 베어스(감독 : 김인식)로 바꾸어 리그에 참가한다. 이해 말에 쌍방울 레이더스가 경영난을 이유로 팀을 해체한다.  89년부터 시행한 단일리그 제도를 양대리그로 분리하여 매직리그, 드림리그로 나뉘어 운영하였다. 선수들 FA제도가 시작 되었다. 한일 수퍼게임을 한국에서 개최한다.

- 2000년 : 8개구단 리그 : 새롭게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신하여 SK 와이번스(초대감독 : 강병철)가 3월 새롭게 창단하는 형식으로 리그에 참가한다. 이 팀은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 전체를 인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수단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리그에 진출하고, 연고지도 전주에서 인천으로 옮겼다. 이로 인해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는 수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 연고지 문제로 인천과 수원 야구팬들의 원성을 듣게 되었다.

- 2001년 양대리그의 실패로 딛고 다시 단일리그로 환원하였다. 전반기 시즌을 마친 후 8월부터 해태 타이거즈가 KIA에 인수되어, KIA 타이거즈(감독 : 김성한. 2001년 하반기 리그부터 출전)란 팀명으로 리그에 참가한다.

- 2004년 프로야구 선수 병역비리가 폭로되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경기에서 일본과 미국을 꺽고 4강에 오르면서 기쁨을 안겨 주었다.

- 2007년 SK 와이번스 우승을 차지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벌떼야구가 도마에 오른다. 시즌 후 현대 유니콘스는 재정난을 호소하였고, 모 기업의 자금난과 지원부족으로 팀 해체를 선언 하였고, 인수 회사로 농협, STX, KT 등 여러 기업들의 소문이 돌았지만, 결과적으로 듣보잡인 투자회사 '센테니얼 인베스먼트'가 현대를 인수하였다. 선수단만 인수하는 2번째 사례였고, 대기업이 아닌 투자회사가 야구단을 인수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야구단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 2008년 : 8개구단 리그 : 우리 히어로즈(초대감독 : 이광환)가 서울을 연고지로, 새롭게 프로야구 리그에 참가 하였다. 첫해 여름까지 KBO 가입금을 납입하지 못하면서, 우리담배(주)와 네이밍 스폰스가 해제되었고, 이로 인한 자금난으로 선수들을 현금트레이드 하면서 근근이 구단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 문제로 프로야구 8구단 체제가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가 전승 우승을 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간한다.

- 2009년 우리 히어로즈가 메인 스폰스를 구하지 못해 '서울 히어로즈'란 팀명으로 리그에 참가 하였다. 08년과 09년 시즌동안 자금난과 신생 투자 기업의 프로야구단 운영으로 숱한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기간 현대팀의 간판 선수들을 현금트레이드 하면서 근근히 구단을 운영하였다.

- 2010년 히어로즈 구단은 정상적인 네이밍 스폰스를 구해 넥센 타이어와 장기 계약을 통해 '넥센 히어로즈'란 이름으로 정상적인 8개 구간 체제의 리그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 2011년 ; 프로야구 인기가 올라가자 리그 확대와 참가팀 증가 논의가 있었고, 여러가지 논의를 거쳐 경남 창원을 연고지로 한 NC 다이노스(초대감독 : 김경문)가 창단하여 2군 리그에서 2년간 활동을 시작 하였다. 이때 부터 광역 연고제도가 도시 연고제로 변경 되었다.

- 2012년 : 정식으로 NC 다이노스가 한국프로야구 1군 리그에서 경쟁을 하면서 9개 구단 체제로 프로야구가 진행 되었다.

- 2013년  : 9개구단 리그 : 이 해부터 NC 다이노스가 2년간의 2군리그 활동을 마치고, 정식으로 한국프로야구 1군 리그에 참가하면서 공식적인 9구단 리그가 시작 되었다. 91년도 부터 시작된 8개구단 체제가 23년만에 9개구단으로 확대 되었다. 또한, 10구단 체제의 완성을 위해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위즈(초대감독 : 조범현)가 창단되어 2군리그에서 실력을 키우게 되었다.

- 2015년 : 10개구단 리그 :  KT 위즈가 정식으로 1군 리그에 참가하여, 드디어 공식적인 10개구단 체제의 리그가 시작되었다. 또한, 이때 부터 한국프로야구리그의 정식 명칭이 KBO 리그로 바뀌게 된다.

- 2019년 : 넥센 히어로즈가 메인 스폰스를 키움 증권으로 바꾸면서, 키움 히어로즈로 팀 명칭을 변경하여 정식 리그에 참가한다.

- 2021년에는 SK 와이번스가 신세계 그룹에 인수되어, SSG 랜더스(초대감독 : 김원형)로 KBO 리그에 참가한다.